본문바로가기

홈 > 커뮤니티 > 게시판

관람후기

이미지
게시물[운명적인 너무나 운명적인]
제     목 운명적인 너무나 운명적인
작 성 자 조병근
등록일자 2018-07-08 22:18:16
첨부파일  
선선한 바람 불고 공기마저 깨끗해 하늘 끝이 다 보이는 날.
이 밤에 나는 슬픕니다.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갑작스레 왜 이런 거창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명품 옷을 입고, 명품 구두를 신고, 명품 가방을 들고
외출을 하신 날.
어땠나요?

남들이 보고 부러워하던가요?
아님
옷이 더렵혀질까,
벗어 놓은 구두 누가 밟을까,
옆에 둔 가방 누가 들고 가버릴까
마음 졸인 하루가 되었던가요?

예술품도 그 가치 때문에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예술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우리를 구속하고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체험한 슬픈 한 달이었습니다.

다시 슬픔을 추스르고 한참 잊고 있던 환기전을 찾았습니다.
환기블루를 마주하니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1959년 작품 [섬의 달밤] 앞에 섰습니다.

작품은 청색 물감을 두텁게 칠한
환기 고향 안좌도 여름 달밤 정경입니다.
여름의 시원함은 물론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까지 줍니다.

화면이 바다와 하늘 이렇게 좌우로 나누어져 있고,
거기에 섬과 달이 정겹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면에 비친 것 같이 아래에 그려져
섬을 그린 좌측 윗부분과 균형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구름인 듯 바람인 듯 섬 위를 가로지르는 두 줄기 선에는
붉은 색을 간간이 넣어 흐르는 느낌을 잘 살리고 있네요.
그 끝에 갈매기 두어 마리 보금자리 찾듯 날아가고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정겨움과 그리움이 가득 느껴집니다.

환기는 이 작품을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하게 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작품으로 회화부문 명예상을 수상합니다.
작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환기는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정착합니다.
오늘의 김환기를 있게 한 운명적 작품인 셈이죠.

역사엔 가정이 필요 없다지만
만약 환기가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정말 재미있는 상상 아닌가요?

다 운명인가 봅니다.
살다보면 운명처럼 거스를 수 없는 일들이 있나 봅니다.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수상이 환기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으니
[섬의 달밤]은 환기에게는
그야말로 운명적인, 너무나 운명적인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작품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상처 입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집니다.

예술품이 그 가치 때문에
인간의 자유와 편안함을 구속한다면
그것을 우리는 명품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명품이라는 미명하에 이미 우상화 되어
우리에게 굴종을 강요한다면
그것을 우리는 예술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제프 쿤스 말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예술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너무 센치했나요?
다 선선한 날씨 탓입니다.

사족
고향은 늘 편안한 곳.
어디를 떠돌다 이제사 돌아온고.
내 다시는 떠나지 않으리...
목록 수정
삭제
팀아
Today 1,220 Total 4,584,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