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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무식하거나 나쁜 놈이거나]
제     목 무식하거나 나쁜 놈이거나
작 성 자 조병근
등록일자 2017-11-07 16: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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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제법 산산합니다.
미술관 1층 돌아보고 2층을 오르며 바깥을 내다보니
그 사이 벌써 저녁놀이 나직하게 깔렸습니다.
겨울이 한 발짝 더 우리 곁에 온 모양입니다.

그래선지 전시실은 한가합니다.
구석진 곳에 앉았던 참한 아가씨가 일어서며 눈인사를 건넵니다.
미안한 마음에 긴 시간 수고 많다며 은근 말을 붙여봅니다.
고맙게도 응대를 해주네요. 힘은 들지만 많이 배운다고요.
무엇을 배우는지요?
겸손을 배웁니다!
예상 밖 대답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니 당연히 관람객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라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한 번 두 번 자꾸 쌓이다보니 저절로 깨우치게 되더라는 겁니다.

아하!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관람객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내가 옳다고 행한 일들을 관람객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차츰 차츰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게 되니
관람객을 이해하게 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러면서 저절로 겸손해 지더라는 겁니다.
참 참한 아가씨였습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벗들과 황매산 억새 길을 걸었습니다.
툭 터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억새밭의 장관.
온 산에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눈부십니다.

정작 사단은 식당에서 일어났습니다.
뭘 먹을까? 다들 고민에 빠졌습니다.
생 돼지찌개, 두부찌개로 압축되는가 싶었습니다.
한 녀석이 자신 있게 큰소리 쳤습니다.
다 필요 없어 생 돼지찌개로 통일!
이 장면에서 웬 통일?
참 어이없고 억울했습니다.
난 두부찌개가 먹고 싶었으니까요.
참 나쁜 녀석이었습니다.

선큰 가든 정면에 걸려 있는
홍순명 작가의 아쿠아리움 작품을 마주하고 섰습니다.
아쿠아리움은 전부 91개 피스로 되어 있습니다.
91개 피스 하나하나는 물결이 되어 부서지는 듯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물결 속을 유유히 유영하는 한 마리 고래.
이곳이 수족관임을 알까요?
어쩌면 넓디 넓은 바다로 착각하고 저렇게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수족관 속 저 고래가 어쩌면 내 모습은 아닐까?
내가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것들,
신념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과연 진실이라고 믿어도
신념이라고 큰소리 쳐도 되는 것인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지 목소리만 크게 내는 놈!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놈!
무식하거나 나쁜 놈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생 돼지찌개로 통일한 그 놈도.

아쿠아리움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밝은 조명을 받아 물결처럼 살아 번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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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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