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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어젯밤 일을 나는 알고 있다]
제     목 어젯밤 일을 나는 알고 있다
작 성 자 조병근
등록일자 2017-06-23 17: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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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매체연구전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안지산의 작품입니다.
다시 그의 작품 앞에 고요한 마음으로 섰습니다.
묵직했습니다. 작품에서 중량감이 느껴집니다.

전시실 절반을 ㄷ자로 차지하고 있는 안지산의 작품 앞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왜 작가는 대형작품 4점을 삼각형으로 디스플레이를 했을까?

왼쪽 벽면에는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이 걸렸습니다.
오른쪽에는 ‘분홍빛 빙해’가 걸려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면 ‘낮잠’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이 2점 걸려있습니다.
ㄷ자 빈 공간 그 가운데 내가 서 있습니다.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삼각형 각 꼭지점에 걸려 있는 이 4개의 작품들은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스토리일까?

좌측에 걸려있는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이라는 작품은
네덜란드 퍼포먼스 작가 바스 얀 아델의 작품과 삶이 모티프가 됩니다.
아델은 바다에 나가 퍼포먼스를 펼치다 실종되는 참사를 당합니다.

슬피 울고 있는 아델의 배경은 차갑고 어두운 느낌의 희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마치 어둡고 막막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듯합니다.
이 작품에는 삶의 허무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슬픔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장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안지산은 아델의 죽음을 자신의 삶에 투영합니다.
어쩌면 안지산은 작품을 하다 죽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분홍빛 빙해’를 마주합니다.
가운데 화면 지저분한 벽면에 초록색 상의가 초라하게 걸려 있습니다.
그건 분명 작가의 모습일 겁니다.
아니 나의 모습,
아니 지금의 현실을 고독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 현실은 얼음으로 가득한 냉혹한 세상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얼음이 분홍빛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잔잔한 물결 위에서의 삶’이라는 작품에도 분홍색이 보입니다.
슬피 우는 아델 앞의 뒤집어진 보트는 바닥이 파손되어 구멍이 뻥 뚫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트의 바닥도 분홍빛을 띠고 있습니다.

분홍색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젠 두 작품의 퍼즐을 조합하면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삶이 허무하다든가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얼음과도 같은 냉혹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안지산은 분홍색을 통해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눈을 돌려 정면의 작품을 바라봅니다.
저런 곳에서 과연 잠이 올까?
나 같으면 저런 곳에서 낮잠을 잘 수 있을까?
'낮잠‘을 보며 가진 첫 번째 의문입니다.

지하인지 반지하인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음습한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안지산은 죽은 듯이 낮잠에 빠져 있습니다.
물감 묻은 검은 소파에 운동화도 벗지 못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가 베고 있는 것은 물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캔바스 천을 포개 얹은 의자입니다.
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얼굴과 머리카락에도 온통 물감투성이 입니다.

의문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런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잘 수 있을까?
두 무릎은 세워 천정을 향하고 상체는 왼쪽으로 돌아누워 있습니다.
자연스런 자세가 아니고 몸이 구겨졌다는 표현이 적절하단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안지산을 저토록 깊은 잠에 빠지게 했을까?

나는 그가 어젯밤에 한 일을 알 것도 같습니다.
안지산은 밤새도록 좌우에 걸린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온 열정을 쏟았을 겁니다.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완성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작가에게는 쉽게 완성의 길이 열리지 않는 법이죠.
밤새는 것도 모자라 아침 내내 작품과 씨름을 했을 게 뻔합니다.
그러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일 겁니다.

작품에 침묵이 흐릅니다.
천금 같은 침묵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위해 죽어도 좋아!!!

안지산의 작품을 바라보노라면
헤비급 권투 선수의 글러브로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 듭니다.
열정적인 작가의 혼이 전시장을 떠도는 것 같아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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