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진(小虛 徐東辰, 1900~1970 대구)
1919년 계성학교를 중퇴하고 1924년에 휘문고보(現 서울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2년 동안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대구로 돌아와 1926년부터 1940년까지 교남(嶠南)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였다. 작가 활동 초기부터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1927년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를 설립하여 서진달, 이인성, 김용조 등의 작가를 양성하였다. 1927년 풍경과 인물수채화 총 45점을 출품한 첫 개인전(동아일보 대구지국 주최, 조양회관, 6월 11일~13일)을 개최하였으며, 1928년에 두 번째 개인전(동아일보 대구지국 주최, 조양회관, 7월 7일~9일)을 개최하였다.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역부근>, 제8회전에 <역구내>, 제10회전에 <오후의 풍경>, 제11회전에 <뒷골목>을 출품하였다. 1928년 ‘영과회(零科會)’에 참여하고 1930년 ‘향토회(鄕土會)’ 창립하였으며, 조양회관 교육부의 주최로 회관 대강당에서 창립전(10월 17일~20일)을 개최하였다. 1933년에 고등문관시험에서 행정과 사법 부분에 동시에 합격하였다. 1953년 ‘대구화우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제3대(1954년), 제5대(1960년) 민주국민당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자화상_1924
Mixed media on paper_33×24cm
서동진은 당대 미술운동의 결정체였던 향토회(鄕土會)를 이끌며 수채화의 독특한 화풍으로 대구화단의 개성을 수립하고 대구 초기 서양 화단을 주도하였습니다.
서동진은 시가지 중심의 골목 풍경이나 신식 건물이 즐비하고 변해가는 도시의 거리를 수채화의 감각적인 색채와 시원스러운 필치로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다. 특히, 서동진은 많은 자화상을 남기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박명조, 조카의 초상 등 친분이 있는 이들의 인물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지금 보시는 작품<자화상>은 휘문고보를 졸업한 시기에 그린 젊고 패기 있는 모습의 자화상입니다. 단정한 차림의 격식 있는 듯함이 느껴지는 이 자화상은 작가가 서양화 입문기에 그린 작품으로, 마치 새로운 시작에 첫발을 내딛는 다부진 표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도풍 서진달 (滔風 徐鎭澾, 1908~1947, 대구)
1930년 부산 동래고보(東萊高普)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연구소에서 3년간 기초 데생 수업을 하다가 1934년 도쿄(東京)미술학교 유화과 예과에 진학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고바야시 만고(小林萬吾)에게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1931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을 통해 알려졌다. 도쿄미술학교 재학 당시인 1931년 제10회전에 <시장(市場)의 일각(一角)>, 1932년 제11회전에 <소녀탄주도(小女彈奏圖>, 1933년 제12회전에 <인물(人物)>, 1934년 제13회전에 <나부(裸婦)>, 1937년 제16회전에 <실내(室內)>, 1939년 제18회전에 <시작나체(試作裸體)>, 1940년 제19회전에 <스토브>, 1942년 제21회전에 <정물(靜物)> 등이 입상하였다. 1939년에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제3회 재동경미술협회전에 <정물 A> 등 9점을 출품하였다. 일본에서 돌아온 1941년 대구 계성중 강사, 인천 소화여고에 출강하였다. 계성중 재직 중 미술부 학생으로 김우조, 백태호, 추연근, 김창락, 변종하 등이 있었다. 1942년 만주(滿洲)하얼빈대공(大工) 강사를 역임하고 1943년 하얼빈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45년 부산에서 미술연구소를 경영하였다.
나부입상_1934
Oil on canvas_90.2x70.3cm
서진달은 작품의 주제만 대담하게 강조한 독자적인 누드 작품들을 확립하였습니다. 과감한 여백으로 처리한 부분과 섬세하고 율동적인 여체의 선 표현, 화면 전면에 부각한 구성부터 다소 거칠지만 힘찬 터치와 색의 강렬한 대비, 빛과 그림자를 선명한 색채로 마치 거친 면으로 큼직하게 조각하듯 묘사한 명암, 유화의 무게감으로 누른 묵직한 톤의 표현, 중후한 입체감 등이 느껴지며 전체적으로 세부 묘사는 간소하게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잔을 중심으로 한 인상파적인 요소를 감지할 수 있으며, 실제로 서진달은 ‘대(大) 세잔 선생’이라고 세잔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왼팔을 뒤쪽 허리에 두고 정면으로 서 있는 여인을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배경과 누드는 동일 색조의 톤으로 조화를 이루지만 단순한 배경과 달리 빛의 선명한 표현으로 신체 전면 가득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누드_1938
Oil on canvas_80.4x53.4cm
이 작품은 측면의 전신을 묘사한 누드 작품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화면의 왼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습니다. 오른쪽에서 비치는 빛은 여인의 신체 전면이 고스란히 받고 있으며 뒤쪽은 반대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색의 대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