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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아줌마와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제     목 아줌마와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작 성 자 조병근
등록일자 2018-11-20 01: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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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술관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4시에 도슨트 설명 듣고 간만에 동성로로 진출하려구요.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미술관에 도착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술관 주변 풍경이 더없이 고즈넉해서 조용히 걷기엔 그만입니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는데다 날씨마저 따뜻합니다.
10여 그루 소나무에서 솔향이 진하게 풍깁니다.

주인 없는 솔향에 취해 잠시 생각에 젖었습니다.
나는 왜 무엇 때문에 미술관을 이리도 자주 찾는가?
내가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나 하는가?
내가 예술 작품을 사랑하기는 하는가?
이런 물음을 품고 아무도 없는 공원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난 예술 작품 읽을 줄도 모르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작가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것보다
작품 이면을 보기 좋아합니다.
거기엔 작가의 땀과 눈물이 얼룩져 있습니다.
작품이 예술이 아니라
작가의 삶이 예술임을 느낄 때 온 몸이 저릿해 옵니다.
이 전율을 느끼려 자주 미술관을 찾는가봅니다.

천개의 우회전을 찾은 이유도
최민화 화가의 작품 이면을 살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4시 도슨트 앞에는 관람객들이 제법 모였습니다.
서로 인사를 끝내고 도슨트가 안내를 시작하려할 때였습니다.
중년의 아줌마 두 분이 상기된 표정으로
질문이 있다면서 갑자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너무 급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세세히 기억하진 못합니다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림이 전부 새빨갛잖아.
왜 이런 그림을 대구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며
왜 이런 빨간 그림에 상까지 주었느냐?
지금 정권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뭐 하는 짓이야 설명도 듣기 싫어.
그러곤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한 듯
의기양양해서 전시장을 빠져 나갔습니다.

우리 모두는 황당했지만
도슨트는 씩 한 번 웃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도슨트의 [파쇼에 누워] 작품 설명이 끝나자 또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앞줄에서 열심히 듣던 아주머니 한 분이 말했습니다.
난 저런 그림 보면 그냥 눈물이 나.
하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이 한 마디에
설명을 하던 도슨트의 음성은 잠시 떨렸고
관람객 모두의 눈은 그 아주머니에게로 쏠렸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진중해졌습니다.

그때 도슨트가 설명을 덧보탰습니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우회적 삶을 산 사람들을 인정해줄 때
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대답 대신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쳤습니다.

벗과 둘이서 어둠이 깔리는 야구전설로를 걸어 시내를 향했습니다.
아줌마와 아주머니가 만들어 낸 극과 극의 두 장면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나쁜, 무식, 용감, 우물, 개구리, 연민, 희생, 역지사지, 똘레랑스......

한편 내 가슴 속에는 화가의 눈물과 땀이 스며들어 온 몸을 전율케 했습니다.
미술관!
바로 이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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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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