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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2018년 7월 추천도서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제     목 2018년 7월 추천도서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작 성 자 미술정보센터
등록일자 2018-08-03 10:26:51
첨부파일 첨부파일 20180803102651_5587.jpg 아이콘 20180803102651_558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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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이충렬 / 유리창 / 653.11 이86ㄱ )
 
 
“동양화에서는 자연을 그리며 자연을 배우지만, 서양화에서는 사람을 그림으로써 사람의 생각을 배웁니다.”- 36쪽
 
그러나 김환기를 비롯한 신사실파 동인들은 절망했다. 전시회장에는 동료 화가들을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이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찾아주었지만,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환기는 그림을 팔지 않겠다고 터무니없는 선언을 하고, 그림 가격도 붙이지 않았다. 화가는 그림 그리는 것이 생업인데 그림이 팔리지 않으니 살아낼 방도가 없었다. 특히 김환기가 아끼는 이중섭의 생활은 눈 EM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전시회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 170쪽
 

탄생 100주년 기념 ‘정본’ 김환기 전기
  왜 김환기를 기억해야 하는가? 그가 한국 화단의 블루칩이어서가 아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추상미술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접목시켜 세계 화단에 당당하게 내놓았기 떄문이다.그는 조선 백자에서 ‘평범한 위대함’을 발견했고, 그 민족적 아름다움이 곧 세계적 아름다움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화가였다. 그가 프랑스에 간 것은 선진미술을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유럽의 화가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러 간 것이다. 그가 세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 간 것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 ‘조선의 특색’으로 세계 화단과 한 판 승부를 보려고 간 것이다.
  전 박물관장 최순우는 김환기에게 “불란서 물만 마시고 와도 모두 그림들이 홱 바뀌는데 수화 그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나는 좋다.”고 했고, 김환기가 “기실은 불란서에 가서 내 개인전을 갖기 전까지는 그곳 작가들 그림에 물들까봐서 전람회 구경도 안 다니고 나를 지키노라 매우 애를 썼다.”고 실토했다. 그가 겨우 환갑 지난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우뚝 섰을 것이다.
 
김환기의 삶과 예술
  김환기의 삶과 예술은 제1기 일본유학 시절(1927~1937), 제2기 안좌도/서울시절(1937~1956), 제3기 파리 시절(1956~1959), 제4기 서울/뉴욕 시절(1959~1974)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화가 입문기이다. 니혼대학 미술부에 입학하면서 그림을 처음 접한 그는 도고 세이지, 아베 곤고 등이 설립한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 들어가면서 추상미술에 빠졌다. 특히 프랑스 유학파 후지타 쓰구하루에게 감명받았다. 1935년 일본화단의 2대 등용문 중 하나인 ‘22회 이과전’에 초입선, 정식 화가가 되었고, 이듬해 ‘23회 이과전’에 연속 입선하여 관심을 모았다. 제2기는 파란만장 격동기이다. 절대적 동반자 김향안과 결혼했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김용준, 길진섭, 정지용 등 우정과 예술을 나누던 벗들과 이별했다. 그러나 이 시절 접한 조선 고가구와 백자 항아리를 통해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며 ‘민족예술이 곧 세계적 예술이 된다’는 자신의 예술정신을 확립했다.
  제3기 파리 시절은 도전과 좌절이다. 1956년 마흔세 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떠났다. 베네지트 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파리는 동양인 화가에게 혹독했다. 김환기는 파리 생활 3년 만에 좌절만 안고 쓸쓸하게 귀국해 홍대 교수로 복직했다. 그러나 파리 경험을 통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4기는 절정과 아쉬움이다. 서울에서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할 때 생을 마감했다. 가장 한국적인 작품소재를 반추상 추상미술로 표현한 것은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김환기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김환기를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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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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